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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은 자에게 복이 있도다(눅 1:39-45)

천사로부터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던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로 찾아갔다. 그 길이 적어도 3일 정도 걸리는 길이었을텐데, 그렇게 엘리사벳을 찾아간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천사가 한 말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엘리사벳도 잉태할 수 없는 여인이었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기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찾아갔을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두 눈으로 천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큰 위로와 힘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호기심이 필요하다. 신앙적인 기대감이 필요하다.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기도를 할 때, 성경 말씀을 읽을 때, 과연 하나님의 약속이 사실일까? 기대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덤덤하게 지낸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그랬다. 노아가 산 위에서 방주를 짓고 있을 때, 왜 노아라고 하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 산 위에서 방주를 만드는지, 가서 알아보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냥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있다가, 홍수가 올 때 죽고 말았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도 롯의 사위들은 그저 농담으로만 여겼다가 망하였다. 하지만 니느웨 성이 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했던 니느웨 백성들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는 영적인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정말 그러한가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그런 호기심이 없어진 것은 수많은 가짜들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는 수많은 가짜들 때문에, 우리들은 속지 않으려고 무덤덤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위조지폐로 인하여 골치 아프다 할지라도 화폐경제를 거부하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가짜가 넘쳐난다 하더라도 참된 진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아예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엘리사벳에게로 갔다. 그리고 천사의 말이 다 틀림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믿음과 확신 가운데 살 수 있었다. 믿은 자에게 복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축복은 우리 주변에 있다. 그런데 그 축복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주님 앞에 나아왔다. 그래서 병 고침을 받았고, 놀라운 축복을 얻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주님을 거부하다가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했다. 그게 아쉽다. 그게 그들에게는 심판이었다(요 3: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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