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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둘람 굴 속에서 만난 하나님(삼상 22:1-2)

다윗은 1급 현상 수배범이 되었기에 유대 땅에 남아 있을 수도 없었고, 블레셋 땅으로 피신하여 조용히 지낼 수도 없었다. 결국, 그가 찾아 들어간 곳은 아둘람이라는 굴이었다. 다윗에게 있어서 이 시기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때 썼다고 하는 시편이 142편인데, 이 시편에는 그때의 고통스러운 심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다윗은 거기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사방이 다 막혀 있지만 굴 입구를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빛도 들어오듯이, 다윗의 삶이 꽉 막힌 것 같아도 하나님으로 향하는 기도는 뚫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다윗은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내야 했지만, 그 기간이 완전히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시며 분깃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사실 다윗은 아둘람 굴속으로 도망했지만, 정말 그가 피한 곳은 하나님의 품 안이었다. 그래서 그곳은 그렇게 절망적인 곳이 아니라 행복한 곳일 수 있었다.

사실 다윗은 더 이상 성전에 갈 수 없었다. 다윗을 도와주었던 아히멜렉 제사장은 사울 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다윗이 있던 그 아둘람 굴이 다윗에게는 성전이 되었다. 바로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성전은 건물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있던 다윗을 위로하셨다. 우선은 다윗의 형제들과 아비의 온 집이 다윗에게로 왔다. 전에는 다윗을 인정하지 않았던 자들이 오히려 이런 상황이 되니까 다윗에게로 나아온 것이다. 그리고 다윗 주변으로는 환난 당한 자와 집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훈련시킨 것 같다. 왕으로서의 일을 다윗은 훈련받았다. 거기서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도와주는 일을 함으로써, 다윗은 왕의 역할을 했다. 왕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자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왕이 아니라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그 동굴 속에서 왕의 역할을 이미 수행했던 것이다. 글고 다윗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나중에 왕답지 못한 행동을 한다. 자신이 보호해야 할 장수를 전쟁터에 보내어 교살하기도 하고, 자신이 돌보아야 할 여인을 겁탈하는 일을 했다. 그게 우리 인간의 문제이다.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 알고 보니 나중에 타락해버리는 일은 우리가 너무 자주 목격했다. 한 때 괜찮았던 목회자들이 탐욕으로 얼룩진 마지막을 보내는 보습을 우리가 너무 자주 목격한다. 인간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죄인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야 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들어간 것 이상으로 주님은 머리 둘 곳도 없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다윗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준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자신의 피를 십자가에 흘려주시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예수님에게 참된 구원과 해방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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