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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 속의 보배(고후 4:7-10)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형통함에서 찾는다. 어떤 사람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고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예들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면 그곳에서 물이 솟아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화친을 청하였다.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 반드시 형통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하게 사는 사람이 형통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신신하게 믿는 사람인데도 오히려 고난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교여행을 떠났는데, 가는 곳마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 것이 아니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심한 반대와 극심한 고통이었다. 더구나 바울은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본 사람들은 바울을 비난하고 조롱하곤 하였다. 바울은 가짜 사도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생각이 팽배해 있다. 잘되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목회자도 누가 훌륭한 목회자인가? 대형교회를 이루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무엇인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려운 교회에서 힘겹게 목회하는 분들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요즘 언론에서 사실 사이즈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까발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교회를 이루면 성인이나 된 듯이 착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안에 보배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아무리 천하를 다 가진들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무익하기 때문이다(막 8:36). 우리는 겉모습으로 속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 같은 질그릇일 뿐인데, 서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면서 교만해지거나 낙망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주님이 있느냐이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교만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가 다 질그릇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못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절망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고, 우리 안에 보배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와 같은 질그릇에 보배이신 주님이 계실 수 있을까? 사실 보배에게 어울리는 것은 보배함이지 질그릇이 아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저 높고 높은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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