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찾아오셨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찾아오셨는가? 그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 부인했던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그의 실패를 아셨지만 그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사명의 길로 부르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이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완벽한 사람만을 찾으신다면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실수가 많고 연약한 사람을 찾으신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시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예수님은 1종 보통 운전면허증이 있느냐고 뭍지 않으셨다. 네가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아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네가 돈이 얼마나 있느냐? 네가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를 묻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주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여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가를 물으셨다.
그런데 사랑은 항상 비교로 검증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임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예수님의 질문은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things)?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배와 그물을 손에 붙들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물으신 것이다. 너는 이런 것들보다 나를 더 시랑하느냐고 말이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어느새 주님보다 물질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고 물질만을 위해서 사는 경우가 많다.
둘째, 네가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Do you love me more than you love these persons?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려고 할 때 아버지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가족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하지 않다고 말이다(마 10:37).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가족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셋째,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persons love me?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갈릴리 바다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은 적당히 하는 것이다. 너무 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인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사실 주님은 우리를 적당히 사랑하고 끝내지 않으셨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