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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어느 한 편에서의 잘못으로부터 비롯되기보다는 쌍방의 과실일 경우가 많다. 교통사고에서 100% 과실보다는 쌍방과실이 더 많은 것처럼 말이다. 부부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면, 그 책임은 양쪽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물론 더 큰 귀책 사유를 가지고 있는 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좀 더 사랑해주고 좀 더 이해해주었다면 그렇게 배우자가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가정을 잘 유지하고 살아가는 가정이 있다면, 그 이유는 상대 배우자가 완벽해서라기보다는 서로 참고 인내하고 배려해주기 때문이다. 허물을 덮어주고 오래 참고 인내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어느 한 편을 비난한다. 그렇게 비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쌍방과실일 가능성이 크므로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한 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비난 앞에서 자신은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없다고 항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최근 어느 친구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아주 유익한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다. KBS2에서 방영한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의 “How 싸움” 편이다. 두 자매가 서로 싸우게 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어떻게 엄마는 그 아이들을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하나의 선물을 가지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는 두 아이에게 “왜 너희는 이렇게 싸우기만 하느냐?”고 윽박지르는 대신, 엄마는 각각 두 딸을 격리시키고 한 아이씩 붙들고 이야기를 했다. “왜 싸웠니?” 하고 물으니, 그 아이가 불만을 표출한다. 그때 엄마는 “그래서 많이 속상했겠구나.” 말해주니, 그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알아주는 엄마 앞에서 그 상처받았던 마음이 치료된 것이다. 그리고 그 엄마는 다른 아이를 붙들고 똑같이 했다. 그 이후에 보여지는 영상은 놀라웠다. 엄마가 뭐라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동생이 언니를 찾아가 말하는 게 아닌가? “아까 언니한테 계속 억지 부려서 미안해” 그 말을 들은 언니가 동생을 꽉 껴안아 주는 모습을 보고 감동이 되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실 그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인데, 우리가 월권하는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없다고 뻔뻔하게 우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양심에서 “네가 잘못 했잖아”라고 가슴을 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주고 위로해줄 필요가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고 희생양을 찾아 비난하기보다는 “힘들었겠구나.” “마음고생이 많았겠구나.” 말해주면 좋겠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권면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안타깝게도 우리는 비난하는 데에는 익숙한데, 실수를 저질러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에게 우리들의 어깨를 내어주는 데에는 서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냥 심판해버리시고 끝내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책임을 지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씻어주셨다. 그분은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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