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에서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이스라엘 민족은 여러 가지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그러한 위기는 밖에서부터 오는 것도 있었고, 환경에서 오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위기는 안에서부터 오는 위기였다. 사실 아무리 큰 위기가 밖에서부터 닥쳐온다 하더라도 안에서 마음만 합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안에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 된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어느 날 이스라엘 민족의 지휘관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다. 모세와 아론이 특별히 무엇을 잘못한 것도 아니라 단순히 그들이 지도자라는 사실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었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민 16:3) 이러한 비난은 말도 안 되는 비난이었다. 모세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민 12:3). 하지만 포악한 바로 왕을 향해서는 한 마디 반항도 하지 못하던 이들이 온유한 모세를 향해서는 교만하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강한 자 앞에서는 몸을 사리면서 오히려 자신을 인격적으로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향해서는 큰소리치는 것은 더러운 죄성으로 가득한 인간의 본성이다.
사탄은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사용하여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면서 행복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사탄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마음을 닫아버려서 가정을 파괴시켜 버린다. 교회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사랑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주고 약한 것이 있으면 감싸주면서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하는데, 사탄은 조그마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희생양을 찾고 다투게 해서 교회를 파괴시켜 버린다. 아무리 큰 위기도 서로가 함께 하면 그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반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서로가 책임 전가와 비난의 칼을 들면 내부로부터 시작한 위기는 그 공동체를 박살낸다. 철학자 윌 듀랜트 (William James Durant)는 이런 말을 했다. “거대 문명은 외부로부터 정복당하기 전에, 먼저 내부로부터 붕괴된다“(A great civilization is not conquered from without until it has destroyed itself from within).” 그 말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사명을 주셨다. 그런데 그 사명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자신이 맡은 역할을 과소평가하면서 다른 사람이 맡은 사명을 보고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하면, 공동체는 와해된다. 11명이 뛰는 축구경기에서 수비수는 수비를 해야 하고, 골키퍼는 골문을 지켜야 하며, 미드필더는 공을 공격수에게 전달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득점한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 때문에 수비수나 골키퍼가 직접 골을 넣겠다고 무리하기 시작하면, 그 팀은 진다. 물론 때에 따라서 그렇게 할 상황도 있지만 말이다. 도움을 주어야 할 순간에 무리하게 슈팅을 시도하는 선수가 있는 팀은 진다. 어느 공동체이든지 마찬가지다. 작게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교회 공동체나 국가 공동체나 다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고전 12:17)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결코 작은 사명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공동체를 무너뜨릴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사명과 역할을 신실하게 담당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신실했느냐가 중요하다(갈 6:4). 세례 요한처럼 자신의 위치를 알고,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29-30)라는 고백이 필요한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