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에브라임 신드롬 (삿 8:1-3)

2021년 5월 23일 주일예배 설교


기드온과 300 용사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300명밖에 되지 않는 용사들을 데리고, 미디안 군인들 13만 5천 명을 물리친 대단한 전과를 올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명령하시기를, 3만 2천 명의 군인들이 너무 많다. 지금 온 이스라엘 민족들 가운데서 전쟁을 하겠다고 모아둔 사람들이 3만 2천 명이나 됐는데, 3만 2천 명의 군사들이 너무 많으니까, 다 돌려보내고, 오로지 300명만 데리고 미디안 군인들과 싸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그 300명의 용사들을 3개 조로 나누어서, 각각 나팔을 들게 하고, 빈 항아리를 들게 하고, 그 항아리 속에 횃불을 감추어서, 미디안 진지 안으로 들어가서, 그 주변에 들어가서, 갑자기 항아리를 깨뜨리고 소리를 지르고, 나팔을 불게 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 진영을 혼돈 가운데 (있게) 만들어 버리셔서, 미디안 군인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겁니다.

이스라엘 군대 300명이 어떻게 한 것이 아니라, 미디안 군인들이 13만 5천 명이라고 되는 그 어마어마한 군대가 있었는데, 그 군대가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고 치고받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싸워서 서로 죽여서 전멸하게 되었고, 300명의 용사들은 그저 뒤따라 가면서 전리품만 챙기고, 그냥 쓰러져 있는 사람 처치하고 하는, 그런 간단한 일을 통해서 승리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참 재미있고도 또한 신이 나기도 하고, 약자가 이긴, 그 엄청난 그 모습을 보면서 통쾌하기까지 한, 그 전쟁의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조심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방법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기드온의 전략이 뛰어나서, 이렇게 소수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물리치는 그 방법이 대단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지, 그때 그 방법이 좋아서 이 방법대로 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여리고성을 매일매일 한 바퀴씩 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돌면 뭔가 큰일이 일어날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돌아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여리고성을 건네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지, 이스라엘 민족이 돌았다고 하는 것이 어떤 특별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아무튼 기드온과 300 용사들이 미디안 군인들을 이렇게 엄청나게 큰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 돌아오는 군인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누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 개선의 행진 가운데 맞이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예상한다고 하면, 환호하는 무리들, 손뼉 치는 무리들, 정말 축하해 주고 감사하고 감격케 하는 그런 환호하는 무리들이 마중 나오는 것이 그게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이 해외에 나가서 많은 성과를 걷고 어둡고 그렇게 돌아오게 되면, 인천공항에 수많은 환영 인파들이 나가서 환호하면서 손뼉 치면서 영접해 줍니다. 이번에 윤여정 씨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게 되었으니까, 돌아온다고 하니까, 수많은 기자들이 가서 그 장면을 촬영하고 손뼉 치고 좋아하는 모습들 그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기드온이 그렇게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나타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기드온과 300 용사들은 뜻하지 않게 에브라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환호하고 기뻐하면서 손뼉 치는 무리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다가와서 따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비난하기 시작한 겁니다. 왜 전쟁하러 갈 때,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느냐? 왜 우리들을 무시하느냐? 왜 우리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느냐고 따지면서 항의하는 그런 무리들이 기드온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말 엄청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참 황당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데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황당한 일들이 어쩌다가 한 번씩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만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느끼는 그런 느낌입니다. 낯설지 않은 풍경인 것이죠.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철저하게 타락한 존재이고, 죄로 가득한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좋은 반응을 보여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잘 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박수를 받으면 불편해하는 것이 우리들의 본성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칭찬하고 세워주고 격려하기보다는, 깎아내리고 비난하고 욕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런 모습을 우리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완벽한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허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먼지를 털겠다고 하면, 먼지가 나지 않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고, 아무리 멋있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멋있는 일에 대해서 멋있는 성과에 대해서 흠잡을 것을 찾아내기 시작하면, 흠잡을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기드온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기드온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냈다고 하는 그 화려한 이야기 뒤에는, 기드온이 미처 챙기지 못한 그런 실수들이 있을 수 있었을 겁니다. 오늘 지금 에브라임 사람들이 따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그 실수를 따지고 드는 것이죠. 그 실수가 무엇이냐면 미처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그냥 자기들끼리 전쟁을 하러 갔다고 하는 겁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그것을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민족이고, 우리도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함께 싸워야 될 그런 사람들인데, 왜 우리들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아서, 우리들이 전쟁에 참여할 수 없게 만들었느냐? 그래서 그 전쟁의 영광을 왜 너 혼자 독차지하느냐? 불만을 터뜨리면서 에브라임이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겁니다.

가만히 분석해 보면 기드온이 잘못했습니까? 잘했습니까? 잘못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기드온이 전쟁을 하러 갈 때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줘서, 기회를 똑같이 제공하고, 똑같은 공평함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 기회를 부여했다고 한다면,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해할 만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상황은 아주 다급한 상황이거든요. 일을 함에 있어서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빨리 조치를 해야 될 상황일 때에는 알리지 못하게 때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전쟁을 해야 되는데, 이렇게 전쟁을 한다면, 어떻게 전쟁이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전쟁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 전쟁을 어떻게 할까요? 누구 누가 참가할까요? 의견을 다 물어봅니다. 국민투표를 합니다. 투표 결과를 가지고, 그리고 다 그 결과를 얻어본 다음에, 그래서 이 사람과 설득하고 저 사람과 설득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다 설득한 다음에, 모든 사람들이 다 가시면, 이해하십시오. 그 모든 결정을 다 끝낸 다음에 전쟁하려고 하면 전쟁에서 이기겠습니까? 그러고 있는 사이에 지게 되겠죠.

지금 급한 상황 가운데서 미처 알릴 겨를이 없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설득할 겨를이 없는 겁니다. 그저 지금 빨리 끝나가서 싸워야 되는 그런 긴박한 상황 가운데서, 어쩌면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그 사람들을 모아서 전쟁을 하게 되었을 것인데, 그 과정 가운데서 소외당한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분이 나빠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3만 2천 명의 군사가 너무 많으니까, 300명으로 줄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에브라임까지 말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은 불만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런데 성경적인 관점으로 본다고 한다면, 이 상황 가운데서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은 바른 성도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시는데, 너희가 만일 그렇게 남들을 비판하게 된다면, 너희도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비판하게 되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똑같은 비난을 받게 될 거라고 하는 그런 의미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남들을 비판하고 욕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판단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해야 될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우리들의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셔서, 영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주셔서, 우리들에게 죄성을 제거해 주셔서, 우리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해 주옵소서. 다른 사람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면, 칭찬하고 격려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기드온에게 나와서 비난을 했던 에브라임 민족을 보면서 참으로 측은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서 에브라임 신드롬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이 에브라임 신드롬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내재해 있는 악한 습성입니다. 에브라임 신드롬이 무엇이냐면, 다른 사람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면 박수 쳐주고 격려해주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하는 마음, 그리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마음, 무시하려고 하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을 향해서 에브라임 신드롬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데요. 사실은 이런 에브라임 신드롬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들어있는 그런 나쁜 습성입니다. 저에게도 들어있는 습성인 것이죠.

그래서 이런 습성들이 어디서 나타났는가? 성경에 보면 사울 왕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사울 왕의 경우는 어떤 경우였습니까? 다윗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준 상황입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협하고 있을 때, 아무도 골리앗과 싸울 수 없는 바로 그 순간 가운데, 사울 왕은 너무나도 다급해서 그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누구든지 저 골리앗만 물리쳐준다고 한다면, 내가 많은 재물을 하사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 골리앗을 물리치기만 한다면 내 사위로 삼겠다고 그런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타나서 골리앗과 싸우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소년이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라고 하는 홍안의 소년이 등장하게 되어서, 그 소년이 물맷돌을 가지고 나아가서 골리앗을 쳐서 물리치고 이긴 겁니다.

그 순간에 온 이스라엘 민족이 너무나도 기뻐서 환호하면서 너무나도 좋아했어요. 너무나도 좋아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여인들이 어떤 노래 불렀냐면 사울이 죽인 사람은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사람은 만만이로다라고 하는 그런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 때, 그 순간에 가장 기뻐해야 될 사람이었던 사울의 마음 가운데 시기와 질투가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 다윗이 결국은 내 자리를 빼앗아 버리겠구나 하는 그런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사월은 그 에브라임 신드롬에 사로잡혀서, 그의 평생이 건전한 일 왕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서,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하는 이야기가 사무엘서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에 가면 대표적으로 에브라임 신드롬에 사로잡혔던 또 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요. 그 사람은 바로 가롯 유다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고 계셨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나타나서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향유의 냄새가 온 집 안을 가득 채우면서 모든 사람들이 그 여인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에 그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느껴야 할 당연한 감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 순간에 느껴야 할 생각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저 여인은 예수님을 저렇게 사랑하는구나. 저 여인은 정말 주님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아무것도 아까운 것이 없구나. 신실한 성도의 마음을 보면서, 나도 좀 그런 마음을 본받았으면 좋겠구나. 나도 저런 헌신과 나도 저런 열정과, 나도 좀 저런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 믿음이 솟아오르는 것이 어쩌면 제일 바람직한 모습일 겁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 가롯 유다는 그 여인을 바라보면서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값비싼 향유를 300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왜 쓰지 않았느냐? 왜 허비하고 있느냐라고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렇게 말한 가롯 유다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우리가 평생에 해야 할 일이고, 긍휼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맞는 말인데, 그런데 그 말을 한 동기가 제대로 된 된 거냐 하면, 그런 동기가 아니란 말이죠.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믿음의 사람을 보고, 신앙적인 사람을 보고, 열정을 내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헌신과 수고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격려하기도 하고, 그리고 본받으려고 하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흠집 내고 비난하고, 그리고 욕하는데 빠른 것이 우리 인생의 죄로 가득 찬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 자녀들을 향해서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부모님이 잔소리를 할 때가 있는데요.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다가 말에, 실수가 돼서 이웃집의 철수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데, 이웃집의 영희는 정말 잘한다고 하는데 하면서, 이웃집 아이를 예로 들면서 친구의 엄마 친구의 딸을 예를 들면서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 자녀들이, “아, 그렇구나. 내가 열심히 못하는구나. 내가 이렇게 열심히 못해서, 너무 안타깝구나.” 나도 그렇게 열심히 하겠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 순간에 그 아이의 마음 가운데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이냐면, 그 아이를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게 우리 인생의 악한 모습이죠. 저는 예전에는 운동을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요. 요즘에는 스포츠를 보면서 참 좋아합니다. 스포츠를 참 좋아하게 되었는데, 특히 축구 같은 경우 좋아하게 됐는데, 예전에 축구를 보면서 굉장히 싫어했었어요. 근데 지금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 요인 가운데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옛날에는 90분 내내 해도 꼴 하나 안 들어가서 재미가 없었던 반면에, 지금 많이 들어가니까 좋아하는데, 또 다른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건 뭐냐면 그 선수들이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함께 싸우는 거예요. 동지가 되어서 함께 도와주는 거예요. 저 선수가 골을 넣으면, 저 선수에게 모든 이목이 주목이 되고, 저 선수에게 박수를 치게 되었고, 그리고 저 선수가 높은 연봉을 받게 되고, 좋아하게 될 그런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해서 깎아내리고, 그 선수에게 공을 안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선수를 도와주어서, 우리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만드는 그 동료의식 그걸 보면서, 얼마나 감동적인지 몰라요. 토트넘에 안 그런 선수가 한 명 있는 것 같아서 좀 약간 아쉽긴 합니다만.

그런데 우리 에브라임 신드름을 가진 우리들이 죄성을 가지고 있어서 늘 기뻐하고 감사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믿음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비아냥거리고, 누군가 열심히 선한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을 오히려 더 깎아내리려고 하는, 그런 못된 습성이 우리들 가운데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늘 기도하며 엎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저희들의 마음 가운데서 죄악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웃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웃으라고 말씀해 주신, 함께 기뻐하라고 말씀해 주신 주님의 말씀을 따르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기드온의 반응은 정말 놀랍습니다. 기드온을 향해서 이렇게 비난하고 욕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이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정말 기분이 나쁠 것 같아요. 나는 목숨을 걸고 가서 싸우고 돌아왔는데, 박수가 아니라 비아냥거리고 욕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면, 정말 기분 나쁘고 정말 화가 나서 그 사람과 싸우고 싶고, 그 사람을 아마 죽이고 싶은 마음이 마음속에 드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마음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기드온은, 정말 기드온은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사사기 8장 2절 3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정말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통 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드온은 이야기합니다. 포도를 딸 때 첫 포도가 맛있니? 마지막에 따는 포도가 맛있니? 마지막에 타는 포도가 훨씬 더 맛있지 않으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훨씬 더 달지 않느냐? 너희들이 행한 일이 훨씬 더 놀라운 일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내가 미디안과 싸운 그 일보다, 너희가 마무리해서 오랩과 스엡을 너희들이 체포했는데, 그 일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너희들이 한 일이 더 큰 일이고, 더 위대한 일이라고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을 칭찬하고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었을 때, 놀랍게도 이 에브라임 사람들의 노여움이 풀리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고 하는 겁니다.

기드온이 이렇게 겸손한 마음으로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그들을 인정해 준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인데요. 어떻게 기드온은 이런 정말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첫 번째는 기드온은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내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잘라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한다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자기가 싸운 게 없어요. 하나님께서 거둬주신 은혜예요.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박수를 돌릴 수가 있었던 것이죠.

두 번째로 이 기드온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기드온은 누가 적군이고 누가 우리 편인지를 정확하게 알았어요. 지금 에브라임은 어떤 상태입니까? 기드온과 싸우기 위해서 달려들고 있습니다. 기드온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달려들고 있습니다. 기드온을 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의 마음 가운데, 저 사람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이 사람들과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기드온은 에브라임은 나의 동포요. 우리가 함께 해야 할 동지요. 함께 안고 가야 할 우리 편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에브라임과 싸우려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이스라엘을 세워 나가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분석해보면 참 흥미로운데요. 미디안이 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칼에 의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망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만들어서 미디안이 서로 싸우다가 망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싸움이 이스라엘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사탄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질해서, 우리의 적이 저 미디안 사람이 아니라 기드온이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기드온과 에브라임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그런 싸움을 통해서 서로 피차 싸우다가 멸망하게 만들기 위한 작전을 사탄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놀랍게도 기드온은 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적군인가를 분명하게 알았고, 에브라임은 싸울 대상이 아니라 품어야 될 대상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적군이냐? 아군이냐? 내가 싸워야 될 사람이냐? 내가 품고 사랑해줘야 될 사람인가?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게 종종 헷갈립니다. 어디에서 헷갈리나요? 우리 가정에서 헷갈려요. 가장 사랑해야 될 사람, 가장 아껴줘야 될 그 사람을 향해서 우리는 싸우고 있고,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우리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싸우는 거예요. 적처럼. 너 아니면 안 되겠다고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서로 전쟁을 하고 싸우는 그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 부모와 자녀가 서로 싸우는 겁니다. 같이 우애를 나눠야 될 형제들끼리, 동기들끼리 서로 싸우는 거 그럴 때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됩니다. 누가 우리의 악운이며 누가 우리의 적인가?

안타깝게도 사랑이 넘쳐야 될 교회 내에서 서로 적이 되어서 싸우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과 교우들이 또는 교우들끼리 서로 적이 되어서 서로가 싸우는 일들이 우리 한국 교회 내에서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심지어 교역자 팀들 안에서 같이 머리를 힘세고 싸매고 같이 동역을 하면서 서로 도와주면서 영적인 일을 같이 해야 될 교역자들 팀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싸우는 일들이, 우리의 싸움은 저 사탄과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서의 싸움이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감사한 건 우리 교회는 안 그래요. 우리 교역자들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들 때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는가? 누가 우리의 적이고, 누가 우리의 아군인가를 생각해야 되는 것이죠.

우리나라가 너무나도 불행인 것은 시민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함께 협력하고 싸워야 할 정치인들이 서로 싸우기만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불행이에요. 함께 협력해서 이 코로나를 극복해야 되고, 함께 협력해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되는데, 싸우기만 해요. 에브라임처럼 시비를 걸고 비난을 걸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동지가 되어서 함께 싸우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인정하고 품어줄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우리들의 전 영역 가운데서 넘쳐나게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질문을 던져야 되는 거죠. 과연 내가 싸워야 될 적인가? 품어야 될 사람인가?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자들을 그냥 내 팽개쳐둬도, 그냥 마음대로 죄악을 저지르도록 내버려 둬도 좋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있어왔는데 교회 안에는 양의 탈을 쓴 이들이 늘 있어왔고, 그러한 일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에 의하면 잘 분별해서 출교 시키라고까지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 우리가 함께 해야 될 아군이 누구인지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실 때 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적으로 생각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옛날 기드온이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기드온을 향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난했던 에브라임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향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조롱하고 멸시하고, 침을 뱉고 또한 채찍질하며 예수님을 향해서 온갖 모욕을 다했을 때, 그 순간에 우리 주님께서는 충분히 저 12명이나 되는 저 천사들을 동원해서 다 쓸어버리려면 쓸어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실 때 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품고 사랑해야 하고 그리고 회복시켜야 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실 때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저런다고 하나님께 기도한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시각 가운데서는 우리가 모두가 다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큰 공로를 세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시고, 별로 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시거나 적으로 생각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골고루 사랑해 주십니다. 심지어 탕자처럼 배반하고 타락의 길로 간 사람도 끝까지 사랑하시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옛날 지미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서 이제 취임식을 할 때의 일화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저 조지아 애틀랜타 쪽에서 살았던 사람인데요. 저 시골에서 땅콩 농사를 지으면서 짓던 가정에서 자라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미 카터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자 모든 가족들이 워싱턴에 와서 그 취임식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보좌관이 가족들을 향해서 브리핑을 해 줬습니다. 오늘 취임식에 어떤 일들이 있을 거라고 다 소개를 하면서 안내를 해줬었는데,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시라고 안내를 하면서 한 가지 주의를 줬습니다. 여러분 기자들이 막 달라붙어서 이런 질문 저런 질문 많이 할 겁니다. 그런데 그 기자들이 질문하면 대답하지 말고 그냥 빨리빨리 동선을 따라 움직여주세요. 안 그러면 큰일 납니다. 그러면 모든 게 흐트러지니까, 대답하지 말고 그냥 움직여주세요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탁을 했어도 누가 기자가 질문했을 때, 그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카타의 가족 중에 누가 그랬을까요? 카터의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막 움직이고 있는데 기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카터 여사님 카터 여사님 안 당신의 아들이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정말 자랑스럽죠? 한번 한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 그 카터의 어머니께서 그 기자를 보면서,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which one?” 어느 아들 말씀이세요? 수많은 아들들이 있는데, 대통령이 된 아들이나 저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이나, 모든 아들 다 사랑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아들을 두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물론 기자는 대통령을 이야기한 거겠지만, 그 어머니의 마음 가운데는 모든 아이들이 사랑의 대상이고, 품을 대상이고, 사랑으로 바라보는 대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의 기준에 따라서, 누군가 조금 박수받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누가 더 인정받는 것 같으면 싸우려고 들고 그리고 끌어내리려고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고, 그리고 정말 사랑해야 될 사람을 향해서 미워하고 싸우다가, 그러다가 망해버리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근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다 사랑해 주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신뢰하며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를 믿고 확신하고, 주의 은혜의 그 길 가운데 담대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9 total views,  2 views toda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