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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주의의 위험을 피해야

똑같은 대상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보이는 것이 각각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데, 이 선물을 받아들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인 상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다. 유대인들은 우리와 똑같은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인 유익을 누리지 못한다. 이슬람교도들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예수님에 관하여 쓴 책이기 때문이다(눅 24:25-27, 44). 성경에서 영생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이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요 5:39, 46).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볼 게 아니고 달을 보아야 하는 것처럼, 성경을 통해서 성경이 가리키는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잘못 읽은 것이다.

유대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였을 때, 그 기적이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먹을 것 때문에 열광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기적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적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이다. 안타깝게도 바리새인들도 성경을 읽으면서 그 성경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님에게로 오지 아니하였다. 그저 율법주의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바리새주의의 함정에 우리 교회가 빠져버렸다. 그래서 바리새인처럼 생각하고 가르친 결과 교회에서 바리새인들이 양성되고 말았다.

바리새인이 되면 예수님이 필요 없어져 버린다. 자신이 율법을 잘 지키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스템 속에서는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바리새인이 되면 영적인 교만함에 빠지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정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바리새인으로 길러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배양되기보다는 그저 칭찬받기 위한 신앙생활이 되어버렸고, 혼나지 않기 위한 신앙생활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른 그 무엇에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를 기꺼이 지신 예수님에게만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연관 설교: http://www.jjvision.org/?p=14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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