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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교사의 사명

은행 강도를 맨손으로 제압하고 인질들을 구해내는 일은 아주 위대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일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강도가 되지 않게 만들고, 믿음의 사람들로 양육해내는 일이다. 주일학교 교사의 사명은 작은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하고 위대한 사명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절망적인 소식뿐이다. 악이 판을 치고 있고,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나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악이 너무나도 커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변가에 널브러진 불가사리를 다 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살려낸 불가사리에게는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내가 사랑으로 돌보고 가르친 아이의 삶에는 아주 위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해변가에 널브러진 불가사리와 같다. 가만 놔두면 영적으로 죽어버릴 것이다. 주일학교에서 겨우 한 시간을 가르치는데, 이 세상에서 인터넷이나 여러 가지 나쁜 영향들이 판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은 아주 절망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믿음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영적인 전쟁처럼 보인다. 하지만 살전 2;11에서 아주 중요한 원리를 배울 수 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을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사랑으로 대했다. 사랑은 가장 강력한 힘이다. 절대적으로 시간적으로 부족하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는다면 소망은 있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지도자를 기르시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모세라는 지도자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히브리 산파들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또한 요게벳이나 미리암의 도움도 필요했다. 이들의 존재는 강력한 바로 왕의 권력에 비하면 아주 미천한 자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했고, 그들의 도움으로 모세는 살아났고 위대한 지도자로 세워질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셨다. 교사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에게도 사명이 주어진 것이고,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다. 그 사명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영적으로 보면 모두가 강도를 만나 죽게 된 것과 같은 상태이다. 이때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도와주었다. 자신의 여행 계획을 망쳐버리면서까지 도와주었고, 자신이 써야 할 재정을 이를 돕는데 써버렸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가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지친다. 그 이유는 열매가 당장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식물은 바로바로 그 효과가 보이기에 키우는 것이 즐겁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을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국에는 엄청난 수확이 있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때가 이르고 거두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당장 열매를 거두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어디선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교사라는 직함이 없어도 교사들이다. 영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서로를 돌아보아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연관설교: http://www.jjvision.org/?p=9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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