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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계명 “일만 하지 말고 쉬라”(출 20:8-11)

오늘은 십계명 가운데서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는 이 계명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십계명에 대해서 매주 오후 예배 때 우리가 다루고 있습니다마는, 작년에 콘서트를 하는 바람에, 우리 안식일에 대한 계명은 건너뛰어서, 오늘 이 시간에 안식일에 대한 계명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안식일에 관한 이 네 번째 계명에는, 우리가 해결해야 될 문제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연 “우리가 지켜야 될 그날이 언제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과연 “그날을 우리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라고 하는 두 번째 문제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는데, 과연 우리가 지킬 그날이 언제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안식일은 무슨 요일이죠? 일요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사실은 토요일입니다. 우리 달력에 보면 일주일의 첫날이 무슨 날로 시작하죠? 일요일부터 시작해서 일주일의 마지막 날 일곱 번째 날이 언제냐 하면, 바로 토요일이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언제 안식일을 지켰냐면, 토요일날 안식일을 지킵니다. 저는 미국에 살았는데, 미국에 가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 있습니다. 저희가 미국에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살았었는데, 토요일날만 되면 유대인들이 아주 검정색 복장을 하고, 검정색 모자를 쓰고,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함께 손을 잡고 자신들의 회담까지 걸어가서 거기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안식일날이니까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서 예배하는 모습을 종종 지켜봤는데요. 그러니까 토요일 날이 엄격하게 말하면 안식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개신교회는, 개신교뿐만 아니라 천주교회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주일날 일요일을 예배하는 날로 정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토요일 날이 아닌 일요일을 지키고 있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지난 그다음 날, 즉 일요일날 새벽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날을 기념해서, 우리가 주일로 지키는 것이고, 그 전통이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내려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의 신학이 발달했는데요. 구약시대 때는 일주일간 일을 한 다음에 마지막 날에 쉬었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미래에 쉬는 날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일을 해야만 했었다고 한다면, 신약 시대에는 이미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안식에 근거해서 먼저 쉬고, 그리고 그 안식의 기쁨을 가지고 일주일을 일하는 그런 주일의 신학이 발달이 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7일 안식교회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요. 제7일 안식교회에서는 이러한 천주교와 개신교의 주의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하면서, 성경 말씀이 안식일을 기억해서 그날을 지키라고 했는데, 왜 엉뚱하게 일요일을 지키느냐 하면서, 토요일날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교회가 제7일 안식교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토요일 날을 지키는 게 맞습니까? 주일을 지키는 게 맞습니까?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되냐면, 다음 문제 두 번째 문제를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면서 문제를 해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과연 “우리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라고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안식일날 일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날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일하지 않고 쉬어야 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인데요.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그래서 주일날 일을 하지 않고, 주일을 온전하게 성수하는 것이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해서, 그렇게 주일날 일하지 않는 것이 한국교회의 전통이 되어 왔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셨던 분들은 과거에 우리 한국교회가 주의를 어떻게 지켰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십니까? 계시죠? 다 까먹으셨습니까? 예전에는 주일날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식당에 가지도 않고 물건을 사지도 않고, 심지어 교회를 위해서라도 주일날에는 돈을 쓰지 않고 토요일날 준비를 했습니다. 주일날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오락을 즐기지 않았고 학생들도 주일날에는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시절 때 주일날에는 공부하지 않는 거예요. 언제 공부했습니까? 주일날이 다 지나는 24시가, 24시 땡 하고 월요일로 바뀌면 그때 일어나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전통들이 이제는 다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마음대로 돈을 쓰고 마음대로 일을 하고 직장에 다니고 주일날 쉬는 그 전통이 모두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과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고 일을 하지 말라고 했던 이 제4계명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왜 이 계명을 주셨는가라고 하는 그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제4계명을 우리들에게 주셨을까요?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계명을 주신 목적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 우리들의 그 계명은 율법주의로 흘러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 율법주의의 대표적인 예가 누구냐 하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켰죠? 아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물건을 들 때 어느 정도까지 드는 것이 일이 될 것인가? 컵을 드는 것은 일인가요? 일이 아닌가요? 그러면 이 컵보다 무거운 쌀을 드는 것은 일인가요? 일이 아닌가요? 이런 고민들이 생겨서 바리새인들은 일이 되는 움직임과 일이 되지 않는 움직임을 구별해서, 그래서 물건을 들 때는 몇 kg까지는 들어도 괜찮지만, 몇 kg 이상 들면은 그것은 일이 되니까, 일을 하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걸어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몇 미터까지 걸어가면, 일이 안 될까요? 몇 킬로미터를 걸어가면 일이 될까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계산해서 어디까지 걸어가면 일이 아니지만, 그 이상 걸어가면 일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 일이 되는 경계선을 정해놓고, 그것보다 한 발짝 더 걸어가면 일이 되는 것이고, 그것보다 한 발짝이라도 덜 가면 일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아, 잘했다”라고 인정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께서 그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오히려 “화 있을진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지만, 왜 주님께서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부터 멀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5장 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게 율법주의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인데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계명을 주신 진짜 마음을 모른 채, 율법의 문자적인 그 규정에만 얽매여서, 억지로 억지로 그 법을 지키고 살았던 것이 바리새인들의 문제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생각해 봐야 될 아주 중요한 문제가 뭐냐 하면, “왜 하나님께서 이 안식일의 계명을 주셨는가?” 하는 그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아니하면, 우리들의 율법을 지키는 것들이 다 율법주의로 흘러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안식일의 계명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돈이나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라고 하는 의미에서 안식일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일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돈과 재물을 얻는 수단입니다. 그러니까 돈과 재물을 많이 얻기 위해서는 일을 많이 해야 되나요? 적게 해도 괜찮나요? 많이 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노동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노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재물을 얻는 겁니다. 누가 공부를 잘하는가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공부를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적게 한 사람보다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성적이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냐면, 그렇게 일을 많이 하지 말라. 그렇게 수고를 많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재물을 우상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재물이 나를 살리고 그 재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재물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일을 하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냐면, 우리의 인생이 정말 불행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엄청나게 일을 하는 가운데, 내가 불행해지고,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멀어지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깨어져 버리고, 가족이 흩어지는, 정말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 내 인생을 다 걸었는데, 결국은 우리 가정이 해체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너희들이 일을 많이 하다가 너희들의 육신을 망가져 버리고, 그리고 가정을 깨뜨려버리고, 그래서 파멸의 길을 걸어가지 말고, 일을 적당히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제4계명 안식일의 법칙입니다. 제4계명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힘들게 만들고, 우리를 고통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돈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그것을 우상으로 생각해서 그 돈과 재물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버려가면서,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다 희생해 가면서, 그 돈을 벌다가는 완전히 파멸의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러지 말고 일을 적게 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과 같으냐 하면, 마치 부모님의 마음과 같아요. 꼬마 아이들이 사탕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탕을 좋아하죠? 말랑카우 같은 사탕을 좋아해요. 그래서 그 사탕을 주면 그것을 너무나도 맛있어서 자꾸만 자꾸만 먹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라고 한다면, 그 사탕을 그 자녀에게 무한정으로 공급해 주겠습니까? 아니면 중단할 때가 있나요? 중단할 때가 있어요. 사탕만 먹으면 영양의 불균형이 생기기 때문에, 사탕을 먹지 마라. 지금은 밥 먹을 시간이다. 엄마가 맛있게 해 준 그 밥을 먹고 반찬을 먹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해서, 아침 점심 저녁을 제때 밥을 먹고, 나머지 시간에 사탕을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그런 부모의 마음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는 돈이 좋은 줄 알고, 재물이 좋은 줄 알고, 그래서 우리의 일생을 다 그 재물을 벌기 위해서 노동의 현장으로 뛰어들고, 우리들의 몸을 그냥 혹사시키면서까지 일을 하려고 하는 우리들을 향해서, 그렇게 일을 많이 하면 돈을 더 많이 벌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사탄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고 쉬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계명이 무엇이냐면, 그냥 단순히 때가 되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그냥 쉬라고 하는 것이 안식일의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돈이라고 하는 우상을 향해서 나를 노동의 현장 속으로 그냥 집어넣어서 파멸의 길로 걸어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전장치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러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안식일의 계명을 오해해서, 그저 기계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무조건 아무 일도 하지 하면 된다고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오해했는데요. 바리새인들은 일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일을 안 하는 겁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놓고 일을 안 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하나님께서 인정할 만한 것이 아니었는데요.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이라는 것이 꼭 꼬마 아이들이 싸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부모님에게 두 아이가 있는데, 그 두 아이가 서로 막 싸우는 겁니다. 꼬마 아이들이 막 싸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들한테 가서 엄마가 이야기합니다. 싸우지 마라. 너희들은 왜 싸우고 있느냐?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절대 움직이지 마. 싸우지 마.”라고 이야기하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그 두 아이가 둘이 앉아 가지고, 엄마가 움직이지 말라고 그랬어. 가만히 있으라고 그랬어. 그러니까 가만히 있자. 그러면서 두 아이가 가만히 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있는데 한 아이가 어깨를 움직입니다. 그걸 보고 그 옆에 있는 다른 아이가 말합니다. 너 엄마가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왜 움직여? 그러니까 그 아이가 또 그 아이를 보면서 말합니다. 너도 움직였어. 너 입술이 움직였어. 너 왜 코로 숨 쉬어? 콧구멍이 움직여서, 서로 싸우는 거죠. 안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죠. 부모님의 말씀은 무엇이냐 하면, 가만히 있는 것이 부모님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라,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하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움직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는 우애한 관계 가운데서 살아가야, 움직이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진짜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안식일의 법도 역시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법을 주셨습니다. “제7일은 쉬어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그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해주신 그 이유를 몰랐어요. 왜 안식일날 쉬어야 되는가를 몰랐어요. 왜 안식일날 쉬라고 말씀하세요? 돈과 재물을 우리들의 우상으로 삼지 말고, 그 돈과 재물을 우상으로 여기면서, 그래서 그 돈과 재물을 얻기 위해서, 내 인생을 아주 힘들고 어려운 그 상황 속으로 집어넣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안식일의 계명의 의미인데, 안식일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돈과 재물을 자신의 우상으로 여기고, 그 돈을 얻기 위해서는 이웃과 싸우고 이웃을 착취하고 고리대금을 하면서,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면서 하는 말이 나는 안식일을 지켰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는 그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위선자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 반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날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당에 들어갔는데 그 회당에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안식일날 그 병자를 고쳐주셨어요. 일을 하셨어요. 왜 하나님께서 일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일을 하셨는가? 하나님의 마음은 일을 안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웃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돌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런 계명의 참된 의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일을 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걷다가 너무나도 배고파서 주변에 있는 밀 이삭을 잘라먹었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보고 말합니다. 왜 안식일법을 지키지 않았느냐라고 책망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둔하시면서 제자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교회는 과거에 바리새인들처럼 주의를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돈을 쓰면 안 됐고, 돈을 쓰면 주일날 돈 쓴다고 책망하고 비난하고, 주일날 왜 이런 못된 짓을 하느냐고 그렇게 비난하면서, 나는 주일날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나는 주일날 잠은 자더라도 주일날 12시가 다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 공부를 하더라도, 나는 주일날 아무 일도 안 했기 때문에 괜찮은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했던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안식일에 법을 주신 근본적인 취지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이해해야 되는데요. 따라서 안식교인들처럼 날짜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주일날 지키면 안 되고, 토요일날을 반드시 지켜야만 제4계명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안식교인들의 주장이 어설픈 거예요. 하나님은 그렇게 일주일 중에서 어느 한 날이 정확하게 그날을 지켜야만 그래야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데, 안식교도들은 그것을 오해해서 날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처럼 일처럼 보이는 것들을 다 하지만 않으면 그러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율법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마태복음 23장 23절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양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우리 주님께서 율법을 우리들에게 주셨을 때, 그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정의대로 살기를 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시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셔서 우리들에게 율법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우리들이 그저 문자적인 규정만을 생각해서, 그것을 지키면서 내가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율법주의의 그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돈이나 재물을 우리들의 우상으로 삼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까? 그것은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일을 열심히 해야 되기 때문에,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면, 더 많이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결국 몸을 망치게 될 겁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지치고 상하게 될 것이고, 진액이 빠진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돈을 사랑하는 자, 돈을 우상을 섬기는 자의 그 비참한 결과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돈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면, 나 자신만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겁니다. 우리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갑질하고, 그들의 피를 짜내면서 최저임금도 주지 않으려고 하면서, 그들을 힘들게 만들어서 더 많은 부와 그 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그 이웃들을 착취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을 수단화하고 비인격적으로 대우하게 되면서, 그래서 그들의 행복을 망가뜨리면서,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그런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냐면 그렇게 하지 말고, 너 자신도 쉬어야 할 것이고, 내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나그네도 쉬게 할 것이고, 내 집에서 일하는 종들도 쉬게 할 것이고, 심지어 짐승들에게도 안식을 주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쉼이 사랑과 긍휼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쉬게 되면 돈을 못 벌게 되면 어떡하나? 이렇게 살다가 망하는 것은 아닐까? 재물이 없어서 우리는 힘들게 인생을 살지 않을까? 그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뭡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돈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살아간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셔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돈이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지켜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서, 과감하게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시편 127편의 말씀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에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24시간 깨어 있어야만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내내 일을 해야만 내가 잘 먹고 잘 사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쉬라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고 입히시고 먹이신 하나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들도 먹이시고 입히신 것처럼, 그 공중의 새들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먹이시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나님께서 백합화를, 오늘 있다가 아궁이에 던져지는 그 풀들도 아름답게 입히시거든, 그 풀들보다도 만 배나 더 귀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지 아니하겠느냐?

안식의 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는 계명입니다. 하지만 종종 어설픈 목회자들이 바리새인들처럼 안식의 법을 율법으로 만들고, 주일을 성수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는다고 협박하고, 그래서 그 법을 지켜야만 살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칙은 이걸 내 말을 안 따르면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내가 잘 나가고 있는 너희들을 망쳐버리겠다고 하는, 그런 조폭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협박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부모님과 같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가 시험 공부한다고 밤새도록 공부하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간다고 성적을 올리고 싶어서 밤새도록 공부를 하는데, 너무나도 피곤해서 꼬박꼬박 고개를 떨구면서 눈을 비비면서 공부하는 밤 2시 3시가 돼도 공부하는 그 자녀를 보면서, 엄마 아빠라고 한다면, 그 밤중에 문을 열고 들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이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나요? “얘야. 그만 자고 쉬어라.” 그렇게 밤잠 설치면서 공부하다가, 공부 좀 잘해보려고 하다가, 내 몸 상하게 되고 더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그다음 날 일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어지고,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데, 이제 그만하고 잠 좀 자고 일어나라. 그렇게 권면하고 싶어지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겁니다. 돈 많이 벌겠다고 아웅다웅하면서, 그것이 나를 살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웃들을 착취하고 힘들게 하고, 그리고 그 엄청난 돈을 갈구어서, 그래서 내가 부자가 되면 내가 행복할 줄 알고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들을 향해서, 그렇게 살지 말고, 그렇게 살면 오히려 네가 상하고, 네 몸이 상하고, 이웃들이 고통을 받고 힘들고 어려우니까, 그렇게 살지 말고 오히려 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안식일의 계명을 주신 이유라고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쉼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에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여라.” 돈은 우리를 착취하고 지치게 만들고 우리의 몸을 상하게 만들지만, 내가 너희들이 수고하는 모든 아픔과 슬픔을 내가 다 지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들마다 쉼이 있을 것이고 안식이 있을 것임을 약속하시며, 저와 여러분들을 쉼의 자리로 초대하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안식의 법을 우리가 현실적으로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어떻게 지켜야 그래야 제대로 지키는 법이 되겠습니까? 어떤 분은 제게 묻습니다. “목사님 주일날 축구 경기 보러 가도 되나요? 목사님 주일날 이걸 해도 되나요? 이걸 하면 안 되나요?”라고 묻습니다. 뭐라고 대답해 주는 것이 옳겠습니까? 저는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하면 죄고 이것을 하지 않으면 괜찮고 천편일률적인 어떤 대답들을 여러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똑같은 행위라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악한 일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선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맞닥뜨린 그 현실의 문제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인도해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지금 허기지고 배고픈 제자들이 안식일날 밀 이삭을 잘라먹으면서, 그것을 통해서 허기짐을 해결했던 것처럼 때로는 우리가 일을 해야만 할 수도 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형편과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묵상하는 가운데, 그 마음을 발견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귀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우리가 고민하면서 하나님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긍휼을 베풀고 자비를 실천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그 길 가운데, 우리가 기쁨으로 이 계명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법이오, 생명의 법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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