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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있으라(삼상 22:20-23)

사울이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친족 85명을 무참히 죽였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무고한 생명까지도 거침없이 죽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신약 시대에 헤롯 왕도 그랬다. 예수님이 탄생한 소식을 들은 후에 그는 베들레헴에 있는 무고한 생명들을 죽이고 말았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윗이 누군가? 다윗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동지로 간주했더라면 사울은 엄청난 유익을 누렸을 것이다. 다윗과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다윗을 미워했다. 결과적으로 사울은 다윗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좋은 왕이 될 수도 없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주님을 마음으로 영접한다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대적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채 마치 고아와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울이 제사장들을 죽일 때 유일하게 도망가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비아달이었다. 그는 다윗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하였다. 결국 그 아비아달은 다윗과 함께 있게 되었다. 사울에게서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는 반면, 다윗으로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400명의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600명으로 늘어나게 되고, 제사장까지 합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모든 사람들이 떠나가게 되어서 결국은 물을 사람이 없어서 신접한 여인에게까지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다윗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떠주는 부하들이 있었던 반면, 사울 주변에는 아첨꾼들만 모이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울과 하나님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결과였다.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 우리에게 더 깊은 영적인 문제는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다윗은 도엑이 아히멜렉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애통해하였다. 분노가 그의 마음 가운데 솟아 올랐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시편 52편은 도엑이 제사장을 죽였을 때 쓴 시편인데,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 감사를 노래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였는가? 돌아가는 현상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이 세상은 악이 승리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아비아달에게 자기 곁에 있으라고 했다. 자기 코가 석자이니 도와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라고 하면서 말이다. 결국, 그는 다윗 옆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해서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도 교회와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그래서 사울이 초대 교회를 핍박할 때, 주님께서는 외면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다. 마치 자녀가 아프면 자녀 대신 당신이 아프고 자녀는 건강해지기를 소원하는 부모님처럼, 주님은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사랑과 긍휼로 바라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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