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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교회의 영적인 아버지가 아니다

우리 한국교회 내에는 목사를 교회의 영적인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러한 생각은 한편으로는 맞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완전히 틀린 말이다. 목사가 영적인 아버지일 수 있는 것은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품듯이 사랑으로 그리고 열정으로 영적으로 성도들을 양육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바울 사도가 그런 모범을 보인 바 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라고 말하여,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스승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마치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처럼 목양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므로 모든 목회자는 바울 사도의 모범을 따라 온전히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사랑으로 목양을 해야한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듯이 말이다.

그러나 목사는 결코 유교적인 관점에서의 또는 한국적 개념의 아버지와 같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아버지는 거의 신성 불가침적인 존재이다. 감히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할 수도 없고, 아버지에게 바른말을 할 수도 없고, 무슨 희생을 하더라도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유교적인 관점에서의 또는 한국적 개념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데, 목사는 결코 그런 의미에서의 영적인 아버지일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마 23:9-10) 그런데 이 말씀처럼 외면받는 성경 말씀도 없는 것 같다.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결코 목사를 유교적인 관점에서의 또는 한국적 개념의 아버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사도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이다. 목사가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서 하나님과 성도들을 중재해주거나 영적인 축복을 전달해주는 전달자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의 가장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천주교에서는 신부가 영적인 아버지이다. 신부에서의 “부(父)”는 아버지(father)를 의미한다. 그래서 천주교 시스템 속에서는 성도가 직접 하나님에게 나아가지 못하고 신부라는 중재자를 통해서 나아간다. 죄도 그에게 고해하여 용서를 선언받고, 축복도 그를 통해서 받고, 기도도 대리인들을 통해서 올린다. 하지만 이것은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유일하신 중보자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인 지도자는 오직 그리스도뿐이기 때문에(마 23:10), 결코 땅에 있는 사람을 지도자라 칭해서도 안 되고 아버지처럼 여겨서도 안 되는 것이다.

목사도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수많은 목사들이 돈 문제로 넘어지고, 여자 문제로 넘어지고, 탐욕으로 쓰러진 예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사람인 목사가 결코 우리들의 영적인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바로 이렇게 타락한 존재들이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다.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영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에게로 가야만 한다.

목사도 주님 앞에서 성도일 뿐이고, 참되신 목자 앞에서 한 마리의 양일 뿐이고, 참되신 의사 앞에서 환자일 뿐이다.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지, 이미 완성되어 마음대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목사도 다른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이다.

안타깝게도 목사의 비리가 드러나 문제가 될 때마다, 목사는 우리들의 영적인 아버지이니까 우리가 비난할 수도 없고 그런 수치까지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들을 듣는다. 교회에서 목사가 성범죄 문제로 또는 재정 횡령 문제로 문제화될 때마다, 그런 논리는 반복되어 왔다. 성경 말씀을 제대로 가르친다고 하는 교회의 목사나 장로의 입에서 “담임목사님이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목사를 어떤 절대적인 영적인 아버지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이 나온다. 첫 번째 반응은 비리를 저지른 목사가 영적인 아버지의 자격이 없다고 공격하는 반응이다. 두 번째 반응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영적인 아버지이기 때문에 욕할 수는 없고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은 모두 성경적이지 못하다. 성경적인 반응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온전히 회복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성숙해지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조건 비난하는 방식도 아니고, 무조건 감싸고 도는 것도 아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런 두 가지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회복시키길 원하셨다. 목사에게도 구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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