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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로 변한 시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때려놓고 맞은 사람이 너무 억울해서 소리치며 울면, “그렇게 소리치고 우는 것은 교양있는 행동이 아니야. 억울한 일이 있어도 교양을 가지고 침착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맞는 말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렇게 소리치며 우는 사람이 왜 그러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죄없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약탈하고 빼앗는 것은 바른 시위방법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약탈은 시위의 목적을 훼손시킵니다. 분명 약탈은 죄성에서 비롯된 것일 겁니다. 하지만 그게 미국에 사는 흑인들이 느끼는 현실입니다. 그들의 생명이 약탈당하고 빼앗기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니, 이미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반항하지도 않았는데, 넘어진 플로이드를 발로 짓밟고 있으면서 일어나 차에 타라고 말하더군요. 일어나지 못하게 하면서, 일어나라고 말하는 게 지금 흑인들이 느끼는 죽을 것 같은 답답함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약탈로 표현되는 것인데, 원인 제공보다 그들의 행위만을 비난하는 것은 바른 접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약탈은 반대입니다. 마틴 루터 킹 같은 평화적인 방법을 지지합니다. 자신들이 약탈당하는 아픔을 겪었다면, 그런 아픔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L.A.에서 있었던 4.29 때 많은 한인들이 피해를 당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보험으로 미리 대비를 해놓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을 보면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나 혼자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도 건강하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게 결국은 우리의 웰빙과 직결되어 있음을 실감합니다. 나 혼자만 감염에 주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감염 예방을 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피해를 당합니다.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습니다. 그래서 불법 체류자들이라 할지라도 추방걱정 없이 무료로 치료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흑인들의 웰빙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결국 그들의 복지가 우리들의 복지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 혼자만 잘 살 수 없습니다. 이웃이 잘 살아야 우리도 잘 살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은 물론이고 말입니다. 사실 이웃이 잘되는 게 우리가 잘 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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