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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열, 이성치성

몇 년 전 남원에 사는 한 가정이 전주에 있는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늘 말씀을 사모하며 멀리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에 참석하던 그 가정은 지난해에 아예 전주로 이사했다. 그것도 교회 앞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한 것이다. 그 가정은 우리 교회를 다니면서 참 많은 은혜를 받고 있다지만, 사실 그분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는 것 자체가 우리 교회 공동체에 아주 큰 축복이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다가, 아무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모습에 이내 실망해버린다. 하지만 이 가정은 먼저 자신들의 마음을 열어주었고, 교우들은 이내 친구가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요즘 그들의 고민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층간소음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고민이었다. 특히 여 집사님이 아주 예민한데, 위층과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아주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이사 온 지 1년도 안 되는 상황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귀마개를 사용해도 소용이 없고, 방음벽을 설치할까 고민도 해보았다고 하는데, 예민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고, 잠을 잘 수 없어 신경이 예민해지기만 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집사님. 방음벽을 설치하거나 귀마개를 사용하는 등, 소리를 없애는 방법으로 소리를 잡을 수는 없어요. 오히려 더 시끄러운 환경을 만들어보세요. 소리를 소리로 잡아보세요.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면, <백색소음>이라는 게 있을 것인데, 그런 걸 틀어놓고 잠을 청해보세요. 도서관에 가면 사람들이 일부러 백색소음을 틀어놓거든요. 그러면 의자 끄는 소리, 기침하는 소리, 걸어 다니는 소리 등 모든 소리가 그 백색소음에 묻혀서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거든요. 그렇지 않고 모든 소리를 차단하면, 발걸음 소리, 책가방 소리, 기침 소리가 더 잘 들리게 되어 있어요. 집안을 조용하게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시끄럽게 만드는 게 더 좋아요. 없애는 방법으로는 아예 없애지 못해요.”

며칠 뒤 교회에서 그 집사님을 만났다. “목사님, 어젯밤에 잠을 아주 잘 잤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기뻤다. 우리는 종종 반대로 처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에 시끄럽다면, 그런 소리를 내지 못하게 압박하는 방법보다 오히려 백색소음으로 그 소리를 잡아먹을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하고 싶다면, 공부하라고 압박을 하는 것보다 잘 놀게 해줄 필요가 있다. 용기가 없어 보이는 자녀들이 있다면, 제발 자신 있게 행동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그럴 때는, 공감해주고 잘 들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목사님의 설교가 별로 은혜가 되지 않을 때는, 목사님도 설교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거나 다른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라고 권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우리 교회에 사랑이 부족한 것 같지 않고, 뭔가 부족한 게 보인다면 그게 불만이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유익하지 못하다. 오히려 부족한 설교처럼 보이는 것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 노력하고, 그래서 은혜가 되었다고 말해주는 게 더 낫다.

문제가 있을 때,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 그래서 한번 멈추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과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유익한가? 과연 이렇게 대처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열을 다스리기 위해선 열이 효과적이고, 소리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소리를 차단하기보다 백색소음이 더 유용하다. 거꾸로 생각할 때,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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