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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교회의 노력

코로나19 상황에서, 뉴욕 주지사는 500명 이상의 집회를 금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와 비슷하게 뉴저지 주지사는 250명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뉴욕주지사는 여기에 추가하여, 각 시설에서 수용할 수 있는 최대 허용 인원의 1/2 이하로만 모임이 가능하다고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예를 들어,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라면, 50명 이하로만 모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 주지사들의 행정명령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으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행정명령이다. 이런 행정명령은 종교단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모임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메이저 리그 야구경기는 개막일을 2주간 뒤로 미루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관중들의 숫자가 500명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 주지사들의 행정명령은 이해가 된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

이재명 지사와 경기도 종교계와의 합의는 그런 점에서 아쉽다. 마치 교회가 다른 곳보다 더 위험한 곳일 수 있다는 근거없는 전제를 한 합의이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교회가 온라인 예배 또는 가정 예배로 전환했을 뿐만 아니라,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모임의 숫자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점심식사를 없애고 악수를 하지 않고 마스크를 하고 최대한 소독을 하고, 외부 출입자들을 제어하거나 따로 관리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환자들이나 노약자들은 출석을 하지 않도록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에만 2m 거리를 유지하는 등의 규제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종교시설을 철폐하겠다는 것은 과한 규제로 보인다.

전혀 모이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이동을 중단하고, 학교를 중단하고, 관공서도 문을 닫고, 영업도 중단시키는 등 모든 활동들을 중단시키면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종교시설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는 분위기가 많다. 하지만 모든 활동을 중단시키는 게 정말 좋은 것인지는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실 콜센터에서의 집단감염 사례에서 보듯이, 종교시설을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종교시설에 국한된 행정명령을 발하는 것보다는, 모든 시설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시도지사들에게 바란다. 미국의 주지사들이 했던 것처럼. 미국의 주지사들은 교회만을 타켓으로 500명 혹은 250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명령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교회가 이런 규제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 행정명령에 따라 적절하게 예배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면, 종교핍박이니 하는 그런 오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종교단체에만 해당하는 행정명령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명령으로 바뀌길 기대한다. 예를 들면, “1제곱평방미터 당 1명만 수용하는 모임을 허용한다.” 식으로 명령을 내려주길 바란다. 그러면, 부페 식당도 자기들의 사이즈에 허용할 수 있는 최대인원이 몇명인가를 계산해서 장사할 수 있고, 영화관도 이런 시기에는 몇명까지 받을 수 있고, 고속버스도 다 태우지 않고 거리를 주고 앉도록 소수의 인원만 태우고, 콜센터도 직장에 다 근무를 시키지 않고 떨어져서 근무하도록 여건을 개선할 테고… 그런데 정작 위험한 곳들에 대해서는 전혀 손도 못대면서, 최대한 조심하고 있는 교회만을 향해서 규제를 가한다면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토요일날 3번씩 종교행사 참여 자제 문자가 날아든다. 이렇게 보내는 공무원들의 의도와 열정은 이해하지만, 이런식으로 어떤 한 부류를 마치 모든 전염병의 원인인 양 오도하는 식의 행정은 많이 아쉽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가급적 피해달라”는 중립적인 표현을 하는 사려깊은 행정을 보고 싶다.

물론 교회는 위험을 초래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전염병을 방지하는 일에 최대한 협조를 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위험하거나 덕스럽지 못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면, 서로 흩어져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가능한 것이지, 굳이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서,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한 일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안전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무모하게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서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시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은 각각의 교회가 각각의 형편에 따라 내릴 일이다. 교회에 대해서만 강제할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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