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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을 울부짖던 이의 실족

지난 9월 9일 4천명이 넘는 나의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의 담벼락에 한 줄 메시지가 떴다. “어제 오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곳곳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메시지를 읽으면서 나는 그 사람의 성향으로 보아서 이건 분명 그동안 많은 신뢰를 주었던 사람이 실족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동안 교회개혁을 부르짖고 외쳤던 아무개 대표가 불륜 때문에 자신이 대표로 있던 복음주의 단체로부터 제명당했다는 뉴스가 곧 보도되었다.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모습이 발각되고 만 것이다. 대형교회의 세습이나 스타 목사의 성추행을 꾸짖으면서 개혁을 부르짖던 그가 사실은 수년간 아내 몰래 불륜을 저질러 오다가 발각되어 대표직을 내놓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충격을 받을 사람이 많을 것은 자명하다.

한편으로는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라고 했던 주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냥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수년 동안의 불륜을 지속해 오는 등 자신은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다른 교회나 목회자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어왔던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건 바리새인들이 하던 잘못이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바리새인이 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남을 비판할 때 자신의 죄는 아주 쉽게 가려지고 마치 자신은 남들과는 다른 거룩한 사람이 된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비난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단점을 먼저 보아야 한다. 아니 다른 사람들의 단점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게 주님의 가르침이다.

물론 이 말은 교회 안에서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그냥 모른 척하거나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덮어두고 방치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성경적인 권면이 있다면, 잘못을 저지르는 형제가 있다면 권면하여 악으로부터 돌이키게 해야 한다(마 18:15; 빌 2:1-4). 만일 음행을 비롯하여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교회 공동체로부터 출교시켜야 한다(고전 5:11-13).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엡 5:5).

사실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잘못을 행하는 자들을 권면하여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징계를 하거나 권면을 하여 그런 악행에서부터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하게 하여 영적인 성숙의 길로 가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교회에 있다. 예전에 서울의 한 대형교회 스타 목사의 성추행이 발각된 적이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경우에 노회나 총회가 반드시 그의 잘못을 다루어야 하며 목사직의 면직 등 그의 잘못에 대한 적절한 징계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회와 총회는 이 문제를 그냥 덮어버렸다. 교회를 사임하고 약간의 근신의 기간을 갖는 것 정도로 문제를 빨리 끝내버리려고 했다. 결국 본인도 제대로 된 회개를 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해버리고 뻔뻔한 행보를 계속하게 만들고 말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이 그 길이 바른 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마 7:13).

이번에 그 당사자는 자신이 맡았던 단체의 대표직을 사임해버리는 것으로 끝내버리려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가 비판했던 사람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디에 소속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가진 공동체(교회)가 그의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적절한 징계를 가해야 한다. 사실 이렇게 발각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발각되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죄를 더 지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회개의 기회로 가져가야 한다. 우리가 짓는 바로 그 죄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주장하는 것은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도 않고 앞으로도 짓지 않을 완벽하고 깨끗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아니 나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더 심한 죄도 지을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는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교회는 그렇게 불완전한 우리들을 영적으로 성숙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만일 나도 죄를 짓는다면, 소속된 노회가 나를 징계해줄 것을 기대한다. 그냥 교회를 사임하는 정도가 아니라 목사직 면직을 비롯하여 적절한 징계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철저하게 회개한다면, 영혼은 살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 개혁을 그렇게 울부짖던 한 사람의 실족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실감하며 예수님의 은혜가 정말 필요함을 실감한다.

(오준규 목사님의 지적으로, 이 분이 목사가 아님을 알게 되어 내용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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