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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로 바라보는 세상

새 예배당을 건축하여 이전할 때, CCTV를 설치했다. 여러 가지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항상 거룩하고 순수한 목적으로만 사람들이 예배당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쁜 목적을 가지고 예배당을 찾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나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쪽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나쁜 사람들만을 욕하고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잘 정비할 필요가 있다.

CCTV의 기술은 대단해서 내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 교회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번에 선교회 이사회 일정과 뉴욕 교회 협의회 초대로 진행된 세미나를 인도하기 위해 미국에 체류할 때에도, 핸드폰으로 우리 교회 주변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언제든지 살펴볼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면 그때 그 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젠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세상이다. 어디에 있든지 장소와는 상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은 그걸 실감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내가 한국에 있어도 카톡이나 문자로 소통하던 사람들이 내가 미국을 방문하는 기간 중에는 카톡이나 문자도 보내지 않는다. 필요한 일이 있다면 충분히 카톡이나 문자로 소통이 가능한데도, 멀리 있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카톡이나 문자는 우리를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그래서 그걸 아는 사람들은 누가 어디에 있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에 CCTV는 내가 세계 어디에 있어도 우리 교회당의 형편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런 기술들이 많이 발달되었다. 이젠 어디에 있어도 주차된 차를 누군가 와서 부딪히면 휴대폰으로 연락이 가고, 외출 중에 집 안에 있는 전기 기구들을 조절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CCTV를 들여다 보는데,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이 보인다. 장로님이 새벽에 나오셔서 기도하시다가 언제 가는지가 그대로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장로님이 집에 가시다가 교회당 마당에 널려져 있는 쓰레기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치우고 가신다. 그걸 보는데 마음이 울컥한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세심한 손길 하나하나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우리 교회는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모습만 보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쓰레기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아니 그냥 쓰레기를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충격을 받는다. 겉으로는 교회를 위해 정말 열심히 수고하는 것처럼 떠벌리고 자랑하고 다니는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행동이 이중적인 것을 발견할 때의 충격은 크다.

CCTV를 보다가 생각을 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시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깊은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계시겠지? 두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생생하게 지켜보고 계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 옛날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당했을 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자리를 뛰쳐나온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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