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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이 많았던 헌금봉투 진열장

3월 2일을 입당예배로 정해놓고 우리 교회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사실 우리가 새 예배당을 매입하기로 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2018년 9월에 설립 5주년 기념 예배와 임직식을 새 예배당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망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틀어져서 입당시기가 11월로 늦추어졌고, 또 늦추어져서 송구영신 예배만큼은 새 예배당에서 드리기를 소원했었다. 하지만 증개축 공사는 우리의 생각보다는 훨씬 더 많이 걸려서, 결국 3월 2일에 입당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2월 마지막 주가 되어도 3월 2일에 과연 입당이 가능할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입당을 미룰 수는 없었다. 2월 마지막 주에 이사를 시작했다. 방송 장비들을 철거해서 새 예배당에 설치하고, 에어컨 시설들을 철거해서 옮겨 설치하는 작업을 시행했고, 장의자를 비롯한 모든 집기는 입당예배를 드리기 전 3일 전에 이사하였다. 입당예배를 드리려면 겨우 이틀밖에 시간이 없어서 수많은 교우가 예배당에 나와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예전 예배당에 있었던 집기들을 새 예배당에 옮겨서 자리를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안성맞춤으로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약간씩 맞지 않는 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번 자리를 잡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을 몰랐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보는 관점이 달라서 누군가 한번 자리를 정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못마땅하고 불편한 점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려고 자리를 이동해 놓으면, 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또 다른 불편한 점이 보였다. 그래서 그 사람이 와서 다시 자리를 옮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헌금봉투 준비대가 그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 헌금봉투 준비대 앞에 탁자를 마련해 놓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탁자를 하나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헌금봉투 진열장과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그새 어떤 다른 분이 다른 탁자로 교체해 놓았다. 하지만 사이즈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튀어나온 탁자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 해결책으로 헌금봉투 진열장을 조금 벽에서부터 떼어놓아서 탁자의 끝에 맞추어 놓았다. 얼마 뒤에 가보니 누군가 다시 그 헌금봉투 진열장을 벽으로 바짝 붙여 놓았다. 벽에서 떨어진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것이 분명했다. 조금 뒤에 가보니 누군가 다시 헌금봉투 진열장을 끄집어내서 탁자의 끝에 맞추어 놓았다. 조금 뒤에 다시 가보니 누군가 다시 헌금봉투 진열장을 벽면으로 붙여버렸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하는 사이에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운영 위원회에서 나온 말 가운데 하나는, 헌금봉투 진열장이 1층에 있는 것은 불편하니 2층 본당 앞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헌금봉투 진열장의 운명은 어떻게 최종 결정될 것인가?

사공이 많으니 교회를 이전하는 일이 일사불란하지 않고, 수차례 옮기고 또 옮기기를 반복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총책임자가 있어서 최종결정을 내려준다면 그리고 그 뜻에만 복종한다면 이사하는 일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이 일은 리더십이 뛰어나고 모든 일을 맡아서 진두지휘할 수 있는 믿을만한 총책임자를 세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 총책임자가 이삿짐을 여기에 놓으라고 하고 저기에 놓으라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놓여진 물건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불평할 것이고 총책임자에게 가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뒤에서 말들을 많이 할 것이 분명했다. 리더십이 뛰어난 총책임자가 있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사랑이었다. 모두가 나 몰라라 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것 하나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이 온 교우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나마 제일 좋은 자리에 헌금봉투 진열장은 위치해 있는 것이고, 다른 모든 집기도 자리를 하나씩 자리를 잡아 가는 것이었다. 나는 보지 못하는 단점들은 다른 사람들에 눈에 보여서 보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아닐까? 서로 약점을 보완하고 사랑으로 채워주어 좀 더 온전하게 만들어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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